변화의 시기

24년도 2분기의 끝이 보이고 있다. 난 평상시 앞만 보고 달리는 경향이 강한데, 올해도 벌써 절반이나 흘러 가버린 이 시점에서, 한번 되돌아보고자 글을 쓴다.

올해는 그야말로 변화, 대격변의 시기라고 밖에 말을 할 수가 없겠다. 인하대 대학원에 통합과정으로 입학하며, 앞으로 최소 5년은 인하대에 더 머물겠구나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는데, 갑자기 교수님이 서울대로 직장을 옮기실 줄이야.

교수님이 3월에 이직하시면서 우리 랩도 분위기가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우리끼리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국 한 줄로 요약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였다. 6월이 끝나가는 지금에야 대부분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과도기에 어쩌면 당연히 발생하는 수많은 추측, 의견, 한탄 등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우리 교수님은 학생들의 의견을 굉장히 잘 들어주시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내 이야기만 하면, 결과적으로 통합과정을 석사과정으로 바꾸고 교수님을 따라 서울대 박사과정에 입학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원래 교수님 밑에서 있었으니 입학 절차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합격을 하고 나서도 사실 마음이 많이 복잡하다. 교수님의 서울대 이직이 나에게도 정말 도움이 될까?

장점을 먼저 꼽자면, 취업 후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서울대 박사가 인하대 박사보다 대우가 대체적으로 나을 수 있겠다. 조금 더 취업의 문이 느슨해질 수도 있겠다. 서울대 학석박이 아니라, 타대생이 서울대 박사를 딴 것에서 얼마나 더 잘 대우해줄지는 굉장히 의문스럽지만. 또한 해외에 나가 취업하는 것도 좀 더 가능성이 열릴 수 있겠다. 진로 관련 좋은 기회들도 아무래도 서울대에 보다 많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하기엔 이 것이 장점의 전부다.

내 생각엔, 흔히 우리나라 공대 중 최고로 치는 서포카 대학에 타대생이 대학원생으로 입학했을 때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선배들이 다져놓은 탄탄한 인프라, 다양한 실험 장비 및 실험 노하우, 깊은 내공을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예외적인 학생들도 있겠지만, 좋은 대학에서 대학원생을 하고 있는 인원들은 평균적인 내공이 더 높아, 주변으로부터 자극도 많이 받을 수 있고 성장도 빨라질 수 있겠다. 누군가는 간판을 보고 가기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박사까지 할 것이라면 간판은 크게 의미 없고(교수 임용 빼면;;) 내 실적이 제일 중요하다. 여하간 이러한 관점에서 나의 경우는 장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교수님이 인하대에 계속 계셨든, 서울대로 가시든 결과적으로 랩 멤버는 거의 같다.

그에 반해 추가되는 업무는 제곱 그 이상이었다. 실험실의 환경 조성(부품, 장비)만 해도 전부 새로 구매해야 할 것이어서, 현재 각 과제에서 할당 가능한 재원이 얼마 정도 되는 지 확인하고, 어떤 부품 및 장비를 우선적으로 사야 하는 지 결정하고, 이러한 것을 구매할 때 행정 절차는 어떻게 되는 지 체크하는 등을 계획적으로 하지 않으면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아, 각 과제 담당하는 랩 멤버들끼리 회의도 많이 했다. 담당 과제도 인하대에서 서울대로 이관해야 하는데, 인하대 산단 선생님, 서울대 행정 선생님, 과제 주관 기관 행정 담당 박사님 등 여러 분들께 질문 드리고 필요한 것 처리하고 해야 했다. (올해 연구비 삭감 건으로 인해 입금도 많이 늦어져 사실 아직도 하고 있다)

게다가 서울대로 이직하시면서 교수님이 팀 제도를 만드셨고, 난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팀장이 되어버렸다. 즉 위의 업무들을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했는데, 거기에 후배들도 케어해야 했고, 새로운 과제 수주를 위해 연구 계획서도 써야 했고, 어쩌다 보니 연구실 소개 발표도 하고, 학부생 졸프 과제도 만들고.. 새로운 업무들이 너무 많아져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이러한 업무들을 하는 게 결국 내 경험이 쌓이는 것이고, 난 돈 벌러 온 게 아니고 배우러 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처리했지만. 나도 MZ라서 그런가? 해야 하는 것은 엄청나게 늘었는데, 한다고 더 대우 받는 것도 아니니(사실 이제 등록금도 내야할테니 오히려 손해일지도.) 마음 한 켠이 답답했다.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손해를 보게 되겠다. 인하대 대학원에 통합과정으로 진학 시의 원래 계획은 좋은 저널에 논문 내서 한 학기 혹은 조금 더 빨리 박사 졸업을 해보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석사과정으로 오히려 한 학기 늦게, 5차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서울대로 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니 조기 졸업은 글쎄,, 네이쳐라도 쓰지 않는 한 말도 못 꺼내볼 것 같아 내 대학원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게 되겠다.

결국 요약하면, 현재로썬 좋을 것이 없다. 주변 상황은 훨씬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기만 한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다른 방안? 사실 있다. 그냥 취업하기.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내 석사 실적은 솔직히 대기업에 취업하기 충분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박사 취득은 하나의 관문이고,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기로 맘먹은 지 오래다. 그래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 지라도 박사 과정에 진학하기로 결정하였다. 환경 자체를 바꿀 생각은 없으니, 이 주어진 상황에서 앞으로 장점을 극대화할 생각을 해봐야겠다.

이러한 주변 상황과는 별개로, 최근 새로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하고 있는 연구 자체는 참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도 많고, 하면서 공부할만한 것도 많은 것 같다. 비록 시간이 없어 저녁 이후에 하거나, 주말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는데, 은근 시간도 잘 가고, 최근은 업무들이 조금 적응이 되서 시간이 좀 더 나는 것도 같다. 또 올해엔 괜찮은 저널들에서 리뷰어 요청도 몇 번 받아, 두어 개 해보았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했지만 보다 논문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도 같고, 재밌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리뷰어간 discussion도 해보고, 좋은 경험이었다.

올해 초 샌프란시스코에 학회가 있어 미국에 갔을 때, 교수님이 올해는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라 하시며 비싼 밥을 사비로 사주신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 번잡한 일이 많았지만(한 번 정도는 더..얻어 먹어도…아 맞다. 또 사주셨지;;), 내가 좋아한 마블의 히어로 말을 빌리자면, 이제 이러한 과도기도 End game에 다다랐다고 본다. 조금 더 힘내 보자.

끝.

댓글 남기기